“줄을 바꾼 거 같은데?” “알아보시네요.” “그럼. 내가 제일 처음 사준 시계구만.” 몸을 틀어 협탁 위로 시계를 치웠다. 다시 누우려 돌아봤을 때 황시목은 한 팔을 내준 그대로 누워있었다. 여전히. 팔베개 습관은 여전한 것 리스트에 속해있다. “아. 왜 이렇게 이쁘지 오늘.” 떨어지듯 풀썩 그 품으로 들어 크게 숨을 내쉬어 보는 한여진의 버릇도 여전한 ...
예전부터 황시목은 대상을 특정해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으로 자주 관찰됐다. 만난지 한 달도 안 됐을 무렵 그 대상이란 대개 한여진이었다. 어쩌다 창 밖으로 관심이 옮겨붙는 때도 있었지만 뭘 그렇게 보냐 막상 물어보면 한여진이 소유한 것과 동일한 차량이 방금까지 몇 대가 지나갔다는 대답이나 할만큼 그 시절 여우는 자나깨나 한여진에게 몰두했다. 집착적이란 느낌이...
폭발하듯 솟았던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구석구석 온몸으로 번지는 부드러운 여운이 기꺼웠다. 더 나긋하고 보다 포근한 손길들이 이어졌다. 호흡에 호흡을 포갰다. 껴안고 부비다 말고 쓰다듬었다. 상대의 등에서 목덜미로. 뺨을 다독이던 손을 어깨로, 팔로 타고 내려가며 쓸었다. 한여진의 노곤한 손 끝으로 툭 뭔가가 걸렸다. 황시목의 시계였다. 한여진은 묻거나...
* 2024. 01. 04 수정 오래 잔 기분이 들었다. 깨어난 기억이 불분명했다. 그러므로 이건 꿈이다. 오래된 꿈들이 떠다니는 꿈. 살면서 많은 꿈을 꿨다. 짧은 꿈. 크는 꿈. 지나간 꿈, 꿈 속의 꿈. 깨고도 깬 줄 모르던 꿈, 꾸고도 꾼 줄 모르던 꿈. 꺼지지 않는 불 속을 달리거나 바닥이 없는 물 아래로 가라앉는 꿈만 반복하기도 했다. 그런 꿈을...
‘엄마.’ ‘응.’ ‘엄마는 왜 그렇게 날 사랑해줘?’ 빨래를 개고 있던 엄마가 TV에서 눈을 떼고 한여진을 돌아봤다. 유심한 그는 한여진보다 부스스 연하게 웃었다. ‘그러는 넌.’ ‘나?’ ‘그래. 넌 나를 왜 그렇게 사랑했니.’ ‘나야 엄마가….’ ‘엄마는 너한테 준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때부터도 날 사랑해주던데.’ 내가 언제 그랬냐는 한여진에게 한영...
약속보다 한참 이른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다. 회사에서 호출이 온 한여진이 잠깐 들렀다 시간에 맞춰 오겠다며 집을 비운 때였다. 집안으로 들어선 셀러는 밖에서 봤을 때보다 커보였다. 그 역시 거실로 안내하는 흰 여우를 물끄러미 보더니 밖에서완 다르다며 웃었다. “제 집 안방이라 그런가. 확실히 좀…. 두고 보자고 이 악물고 협박하던 앤 여기 안 사나봐.” “...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쉽다며 한여진은 핸들을 틀었다. 밝은 저녁에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각자 가고 싶은 곳 한 군데를 들렀다 집에 가기로 했다. 황시목은 마트에 가야한다고 대답했다. 필요한 곳이 아니라 소망하는 장소를 고르라고 여진이 다시 한 번 물었지만 잠시간의 고민 뒤에도 그의 대답은 같았다. 가까운 마트에 차를 댔다. 입구에서 멈칫한 황시목은 휘황한 문...
서동재가 소개한 셀러는 서동재보다 까다로웠다. 접선 장소를 직접 지정했다. 리셋을 사려면 구매자 둘을 반드시 함께 확인하겠다는 조건까지 통보해왔다. 그와 거래하려면 황시목이 집 밖을 나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둘은 장단을 재보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깔끔하게 거절했다. 이 이상을 더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서동재와의 미팅 이후 틈틈이 다른 루트를 모색...
* 2021. 03. 01 수정 ‘사랑을 먹어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뒤를 따라 걷던 시목이 묻자 선대는 걸음까지 멈추고 크게 웃었다. ‘영주를 알기 전 나를 보는 것 같구나.’ 어리석다. 어리고 어리석어. 그러나 입으로 탄식을 하면서도 그는 돋아난 흥미를 치우지 못했다. 이상하게 튄 그의 관심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가.’ 대뜸 나온 호칭은 낯설었...
주말은 아침부터 흐려서 점심에도 밝지 않았다. 깜부룩 들었던 짧은 잠은 서서히 깼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는 동안 시야 안으로 걸려야 하는 이가 없었다. 미확인 메시지에 간단히 답장한 한여진은 소리를 따라 욕실로 발을 옮겼다. 열린 문에 반쯤 기대 서니 머리를 말리던 그와 거울 안으로 눈이 마주쳤다. 저를 찾은 이유가 궁금한 눈짓이었다. 보통 ...
단축 근무에 익숙해졌는지 밤을 샌 것도 아닌데 피곤했다. 얼추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을 확인한 한여진은 서둘러 자전거 자물쇠를 풀었다. 아침부터 팀원 하나가 맞물려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오후 나절까지 멘탈이 나가 있었다. 퇴근 시간 쯤엔 이미 넉다운이었다. 팀원이 막내에게 집에 가고 싶다며 주절대는 한탄이 들렸다. 옆에 있던 그보다 윗연차가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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